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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6.06.07 조회수 2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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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스물두번째 남기는 글 - 무하마드 알리의 국기원 방문(1976.6)

 

 

 


[김운용 칼럼 - 백 스물 두번째 남기는 글]


무하마드 알리의 국기원 방문(1976.6)


중앙-29, 1976년 5월 28일 국기원을 방문한 모하메드알리에게 김운용원장이 며예단증 수여.jpg

 

“The Greatest"로 알려진 세기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가 74세로 타계했다. 나비처럼 날고 벌처럼 쏘았다고 알려진 전설의 복사 알리의 타계로 미국 CNN은 하루 종일, 전 세계 언론에서도 끊임없이 그의 거대한 생애를 조명하고 있다.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의 인종차별에 항의하며 금메달을 던져버린 일, 베트남전 반대와 군 복무 거절로 타이틀 박탈 후 5년 만에 타이틀을 재탈환해 56승 5패와 19회의 타이틀 방어를 하는 동안의 명승부, 인권과 평화를 위한 투쟁 등 그의 스토리는 그칠 줄 모른다. 그는 루이빌(Louiville)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이 조사를 할 예정인 사회장에서 영원히 이 세상과 작별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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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5월28일 모하메드알리 국기원방문 도복입은 모습.jpg


중앙-29, 1976년 5월 28일 국기원을 방문한 모하메드알리에게 김운용원장이 며예단증 수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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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잊을 수 없는 그의 국기원 방문을 기억한다. 1976년 6월 그가 도쿄에서 이노키와 레슬링 대 복싱 대전을 한 직후, 수행원 30명을 대동하고 서울로 날아와 국기원을 방문했다. 여비는 MBC 방송국이 내고(그때 돈 3천만원) 초청 호스트는 세계태권도연맹 총재인 필자가 맡았다. 이 때는 WTF가 창설된 지 3년밖에 안 되고 해외에서는 아직 태권도 도장도 가라테 도장으로 운용되고, 서울에 그리 많은 귀빈이나 명사가 오지 않을 때였다. 우리에게는 태권도를 알릴 절호의 기회였다. 국내에서도 도쿄에서 이노키와의 대결이 TV에서 방영되어 그의 서울 방문은 국민의 상당한 관심사였다.


그를 맞이하기 위해 국기원 정문에 "Welcome: Muhamad Ali, The Greatest"라고 플랜카드를 올리고 태권도 시범을 보이고 명예단과 선물로 신라 왕관(모형)도 주었다. 국기원에는 그를 보려는 군중이 몰려왔다. 이 때 그는 태권도가 눈 깜짝하는 사이에 타격한다고 넉살을 부리고 이노키하고 주먹 두 번 흔들고 600만불을 벌었다고 했다.

 

 

 

1976년 모하메드 알리 국기원 방문(우측부터 엄운규, 준리, 알리, 김운용내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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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에는 같이 미2사단 장병을 위문하고 임시 특설링에서 미군 장병과 복싱 시범경기도 하면서 져주는 척도 했다. 그 다음날에는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스틸웰 8군사령관과 스나이더 미국 대사, 그의 부인과 일행 30명을 초청해 오찬을 했는데 거기서도 스틸웰 대장의 어깨에 달린 4성 계급장을 만지면서 멋있다고 넉살을 부리고 나의 아들, 딸들에게는 기념으로 메뉴에 일일이 이름을 적어 서명을 해주었다. 상당히 겸손하고 다정한 면모를 엿보았다. 말도 잘했다.

 

그 후에는 뉴욕호텔에서 한 번 만났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최종 성화주자로 나와서 세계를 놀라게 했었는데 파킨슨병 투병중이라 손이 떨리는 것이 화제가 되었다.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중요한 시상식은 사마란치 IOC위원장과 IOC 제1부위원장인 내가 번갈아하고 다녔다. 농구 결승에는 필자가 가고 아테네(Athens, Georgia)의 조지아대학교에서의 축구 시상에는 사마란치가 가게 되었는데, AIBA의 간청으로 시상자가 뒤바뀌었다. 나는 아벨란제 FIFA 회장과 축구 시상을 했는데 아벨란제는 무척 불만스럽게 감정을 나타냈다. 아벨란제가 보기에 나는 우습게 보인 모양이다. 나중에 들으니 사마란치는 NBA 선수로 구성된 미국의 우승팀에 시상도 하고 무하마드 알리의 잃어버린(?) 금메달을 다시 수여했다고 들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무하마드 알리는 우리를 위해 싸웠고 이제는 마틴 루터킹과 넬슨 만델라와 같은 서열에 올라섰다고 조의를 표했다. 우리도 꼭 40년 전 그의 국기원 방문과 명예단 전수, 그리고 우리와의 인연을 다시 생각하면서 그의 명복을 빈다. 그의 복싱 이상의 전설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2016년 6월 7일 오전 11시20분

김 운 용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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