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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6.04.14 조회수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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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열아홉번째 남기는 글 - 사마란치와 올림픽의 중흥



[김운용 칼럼 - 백열아홉번째 남기는 글]
사마란치와 올림픽의 중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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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스페인 왕궁에서 국왕 내외와 IOC 집행위원들

           
“우리가 자주 가던 바로셀로나의 비아 베네토(Via Beneto) 레스토랑에서 5월 17일 14시에 만납시다.” 30년지기 친구인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Juan Antonio Samaranch)국제올림픽위원회(IOC) 종신명예위원장과의 마지막 통화였다. 또 바르셀로나에 새 호텔이 생겼다고 초청한다는 것이었다. 2010년 4월 21일은 세계스포츠계의 위대한 별이 떨어진 날이다. 또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프랑크푸르트에서 토마스 바하와 저녁을 하기로 했던 것도 취소했다. 개인적으로는‘반평생의 동지이자 형제’를 잃은 안타까운 날이었다.

마케팅 전무가 미첼 파인은 그의 저서 [Olympic Turn Around]에서 사마란치는 올림픽 운동을 중흥시키고, 재정파탄으로 빈사 직전에 있던 IOC를 살려내며 황금시대를 이끌었다고 했다. 또 한국에게는 서울올림픽 성공, 태권도의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 성사 지원 등 큰 도움을 준 잊지 못할 고마운 사람이다. 개인적으로는 한 때 애증의 관계이기도 했다. 필자가 IOC 위원장에 도전했던 2001년 모스크바 IOC총회 때, 그는 여러 가지 이유로 객관성을 상실한 채, 자신의 후계자로 자크 로게(Jacques Rogge)의 손을 들어주기 위해 말 같지 않은 선거 규정을 만들고 로게를 위한 선거운동을 하고 타후보 인신공격을 하는 등 무리를 많이 했다. 또 IOC 권좌에 대한 지나친 욕심이‘솔트레이크시티(Salt Lake City) 스캔들’로 이어져 자신과 IOC의 명예에 큰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그래도 IOC는 사마란치 시대 전과후로 나눠진다고 평가될 만큼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이다. 자크 로게 전 위원장도 나름의 노력을 했지만 아무리 차별화하려 해도 사마란치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사마란치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사마란치와 로게, 전직 IOC위원장인 두 사람을 비교하여 차이점을 알아보고자 한다. 요청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스포츠외교를 연구하는 사람,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토마스 바하 IOC위원장이 단결을 호소하고 Agenda 2020이라는 개혁안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더구나 지금은 세계가 약물 복용과 IAAF, FIFA의 부패 문제로 시끄러운 때다.   

사마란치 타계 직후 두 사람의 차이를 영국의 한 대기자가 논평을 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사마란치 시대를 황금시대(Golden era)라고 한다면 로게 시대는 역사가 없는 시대(Era without history)”라고 본다고 말했다. 사마란치는 경륜이 많은 정치가, 경제인, 외교관, 스포츠행정가, 스포츠맨이다. 스페인의 자치령 카탈루냐(Cataluna) 주지사, 정당 당수, 스페인올림픽 위원장, 체육장관, 모스코 대사, 스페인 최대 저축은행(CAIXA) 회장 등 여러 분야를 두루 거치면서 다방면에서 경험을 쌓았고 축적된 힘은 상당했다. 또 상당한 재력가이자 문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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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란치 위원장과 필자


로게는 벨기에의 정형외과 의사이며 올림픽 요트경기에 출전한 선수출신이다. 자국의 올림픽위원장을 한 번 지내고 두 번째는 반 덴 에디(Van den Eede)에게 낙선해서 유럽올림픽위원장도 자격이 상실되자 사마란치가 규정을 바꾸어 후보인 헝가리 장관을 낙마시켜 당선시킨 바 있다. 사마란치가 좀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면 로게는 다소 냉혈한인 것 같다. 로게는 사마란치가 가진 품성 즉 승리에 겸손, 패자에 동정, 진정한 위대함은 단순 등이 더 필요한 것 같다. 로게에 대해 영국의 한 대기자에게 평을 물었더니 직업에서 오는 꼼꼼함으로 경직, 요새화되어 제한돼 있고, 의사라는 직업은 필연적으로 자기가 옳다고 믿는 관념의 소유자라 하였다. 그 한마디가 로게의 그릇과 품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럼에도 사마란치는 퇴임 3년 전부터 그를 데리고 다니면서 키웠다 한다. 이에 대해 사마란치는 늘 부인해 오다가 2010년 봄에 일본 요미우리신문에 자기가 로게를 지지했다고 처음 진실을 밝혔다. 그러나 로게는 사마란치 도움 없이도 IOC 위원장이 될 수 있었다고 하고 다녔다. 언론과 파리의 기자들도 “모스크바에서의 선거 규정은 그(자크 로게)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유럽연맹 비용으로 출장을 다니고 유렵연맹의 후원으로 선거준비를 했다”고 말한 바 있다. 사마란치 입장에서는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격’이라고 할 수 있지만 끝까지 도움 되는 말을 하던지 ‘노코멘트’였다. 사마란치가 로게를 시킨 것을 얼마 안가 후회했다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사마란치는 로드 킬라닌(Lord Killanin) 전임 위원장에게 1주일에 한번은 전화를 걸고 상의를 했다. 반면 로게는 1년에 한 번도 사마란치에게 연락하는 일이 없었다. 지금의 IOC위원장 바하는 사마란치 퇴임 후에도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빈번히 의견 교환을 했었다.

사마란치는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올림픽에서 보이콧을 축출했다. 또 아마추어, 프로의 구별을 없앴다. 지금은 올림픽 때마다 TV나 스폰서에서 들어오는 돈이 40억불이 넘는다. 또 많은 도시가 올림픽 유치를 신청하고, 많은 기업이 1억불씩 내고 너도 나도 탑스폰서(Top Sponsor)가 되려고 한다. 재정적인 안정은 운동선수들로 하여금 풍족한 장기계획을 가능하게 했다. 로잔에 1억불을 들여(모금) 올림픽 박물관도 1994년에 개관했다. 한국도 필자가 모금에 앞장서 650만불을 기부했다. 사마란치는 비밀사교클럽 같은 IOC를 공개하고 개혁을 추진했다. 그는 각국 국가수반과도 대등하게 정치와 외교 교섭을 해냈다. 또 올림픽에서 한 명도 없던 여성 IOC위원을 11명으로 늘리고, 모든 종목에 여성이 참여할 수 있게 하고 올림픽 참가 여자선수 비율도 거의 50% 수준으로 만들었다. 반쪽짜리 올림픽이었던 모스크바올림픽이 80개국, 동서진영이 모두 참여해 위대한 올림픽으로 평가받는 서울올림픽은 160개국이었고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참가국이 205개국이었다. 올림픽 TV시청자는 40억이다. 베이징올림픽 개회식만 시청자가 10억이라 한다. 올림픽은 회를 거듭할수록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변모해 갔다. 그 반면 약물통제기관인 세계반도핑기구(WADA)를 압력에 의해 할 수 없이 만들었지만 여전히 약물복용이 문제되었고, 올림픽의 비대는 상업화로 이어져 베이징올림픽에 450억불. 소치올림픽이 500억불이 투자될 정도가 되었다. 

솔트레이크 유치 관련 부패는 결국 부자나라 아니면 올림픽을 개최할 수 없다는 말까지 만들었다. 사마란치는 끊임없이 IOC 위원의 연령 제한을 바꾸고 IOC헌장을 바꾸어 21년간 IOC의 수장 노릇을 했다. 권좌에 대한 욕심이 솔트레이크 스캔들을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다. 그 후에 솔트레이크 스캔들은 IOC위원들이 지나친 대접이나 편의를 받았다는 것이지 FIFA나 IAAF처럼 수백만불의 금전이 오가고 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사마란치는 개혁을 강행했다. 사마란치는 처음 약속대로 1997년에는 은퇴를 했어야 했다고 후회하곤 했다. 올림픽을 동계·하계로 분리해 2년마다 개최하게 한 것은 올림픽의 희소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야구, 축구처럼 프로스포츠가 올림픽과 대등할 정도로 발전하고 있고 다른 군소종목들도 재정적으로 독립적인 운영이 가능해 졌다. 다시 말해 올림픽에 목을 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NFL, MLB, NBA가 좋은 예이다. 

사마란치는 올림픽 운동의 3대 축을 하나로 묶었다. 하지만 로게의 행보는 그와 반대로 결속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았다. IOC의 공식 역사가이며 런던타임즈의 대기자였던 데이비드 밀러는 '스포츠인턴(Sorts Intern)'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GAISF는 한국의 김운용 회장 밑에서 모든 올림픽 종목과 비올림픽종목 국제연맹의 중요한 대화의 장으로 번창했다. 하지만 자크 로게의 묵인하에 야심 큰 사이클연맹회장 하인 베르부르겐이 와서 GAISF를 Sprts Accord로 개명한 뒤, 매년 여는 컨벤션으로서 확대된 상업행위를 시작했고 재채기만 해도 돈을 거두는 상당한 회비를 내는 단체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IOC의 황금시대를 이끈 사마란치는 왜 자신의 후계자로 로게를 선택한 것일까. 이에 대해 영국의 그 대기자는 “사마란치가 모든 것을 이뤄놓은 상태에서 아마 IOC의 평온시대(Tranquility)를 바랐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로게는 사마란치가 지지 안 해도 될 수 있었다며 자신을 사마란치와 차별화하려고 노력을 해왔다. 로게가 처음으로 관장한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은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특히 러시아 피겨스케이팅 페어 판정과 노르딕 종목에서 아홉 차례나 메달을 따낸 라리사 라주티나(Laris Lazutina)의 실격 문제로 일주일간 지속된 분규에 대해 푸틴(Putin) 러시아 대통령이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푸틴은 IOC는 지나친 상업주의와 편파적인 판정으로 솔트레이크 올림픽은 실패작이 되었다고 비판했다. 러시아 여당은 선수단 철수를 준비했고, 러시아 NOC도 2004아테네올림픽 보이콧을 선언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자 로게는 페어 금메달을 두 개로 쪼개고, 실격된 선수에게 실격 이전에 획득한 은메달 두개를 수여하는 신속한 결정을 연출했다.  

자신도 IOC에 무언가 유산을 남겨놓기를 희망하는 로게는 얼마 전 청소년 올림픽을 싱가폴에서 개최했다. 로게는 청소년 경기를 유럽 NOC 회장 시절 유럽에서 매년 시행했는데 스포츠 행사라기보다는 놀이 비슷한 것이었고, IOC가 3000만불을 지원해서 성사시킨 청소년올림픽도 청소년의 문화, 교육, 친목행사 참가 등에 더 중점을 두었다. 청소년올림픽은 1996년에 사마란치 제안으로 필자가 준비위원장으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으나 솔트레이크 사건이 터져 중단되었던 것이다. 스포츠가 20세기 말에 극적인 대중화에는 성공했지만 청소년교육과 세계평화라는 올림픽 이념이 많이 훼손되지 않았나 염려 되고 있다. 그래서 로게는 청소년올림픽을 유산으로 남기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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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로부터 토마스 바하, 필자, 자크 로게



결국 로게는 사마란치와의 차별화를 위해 극단적 언행까지 보이며 노력했지만, 세론은 사마란치가 만들어 놓은 재정왕국을 유지하면서 특전을 누렸고 문제를 많이 남겼다고 평가할 따름이다. 두 사람은 ‘보스’ 기질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사마란치는 IOC 위원들의 활동이 문화적 차이로 자국의 법이나 제도에 저촉되어 문제가 발생할 경우 그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반면 로게는 그러한 경우 외면하는 편이다. 또한 윤리위원회를 자기 구미에 맞게 적용한다. 로게는 IOC 위원장으로서의 무게감과 지지세력 부재로 사마란치 소망대로 평온을 유지했다. 그는 극소수의 측근을 거느렸지만 아무하고도 상의를 하지 않았고, 그 결과 IOC 내에서도 사마란치 때 같은 가족분위기는 찾아 볼 수 없게 됐다. 진정한 차이점과 업적은 후에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사마란치와 로게의 행보는 한국에서도 큰 차이점을 보이다. 한국과 어떤 관계이며, 한국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를 비교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친한파였던 사마란치는 평화 시 일류의 최대종합제전인 서울올림픽을 보이콧 없이 성공시키기 위해서 심혈을 기울였고 30회 이상이나 서울을 방문했다. 이때는 지금처럼 IOC 코디네이션 커미션이 없을 때였다. 한 때 한국의 대변자처럼 한국을 보호했고 서울올림픽 성공 외에도 부산아시안아게임 유치 때 대만의 정치적 물량공세에 부산이 고전하자 직접 방한해서 도와주었다. 또한 태권도 올림픽 채택은 사마란치가 없었다면 아무리 필자가 열심히 했어도 불가능했을 거다. 1995년에는 김영삼 대통령의 요청으로 2002년 월드컵 한일공동개최를 FIFA의 아벨란제 회장을 반협박조로 두 번 설득하여 성사시키기도 했다. 이건희 삼성회장을 IOC위원으로 만든 것이나, 시드니에서 남북공동입장이 성사되게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도 사마란치이다. 그런 사마란치가 2003년 프라하 IOC총회에서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대해 한 조언을 한국사람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고 세 번이나 돈을 어마어마하게 쓰고 국력을 총동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당시 로게는 평창이 20표 나올 거라고 미국 NBC의 에버솔(Ebersol) 회장에게 말했다 한다. 이때 에버솔 회장은 동계올림픽이 아시아에 가면 NBC의 광고손실이 5억불은 될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물론 필자의 조직에서 오는 표덕에 평창이 선전했지만, 결과는 사마란치의 조언대로였다. 그때 사마란치의 조언은 “네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이번에는 밴쿠버나 잘츠부르크를 꺾기 힘들 거다. 2등만 해라 2등도 좋은 2등을 해라. 개최지 표결 후에 있을 부위원장 선거에서 네(김운용)가 당선되면 그 힘으로 4년 후 즉 2007년 과테말라 총회에서는 틀림없이 이길 것이다”였다. 

로게의 한국관계는 1988년 서울올림픽 때 벨기에 선수단장으로 온 것, 1999년 서울 IOC총회 때 온 것, 대구 U-대회, 부산아시아게임 폐회식, ANOC총회에 온 일 등이 있다. 2004년 11월에는 부부가 비공개로 그 후에 여론의 대상이 된 삼성미술관 리움을 방문하기위해 방한했다. 그 때는 KOC에 보도관제(報道管制)를 요청하고 아무도 만나지 않는 ‘은밀한’ 방문이었다. 마지막은 당시 KOC 위원장의 건의로 청와대가 초청을 하면서다. 당시 청와대가 국빈급 접대와 선물 증정이 끝난 후 김정길 KOC 위원장을 IOC위원으로 임명해 달라고 요청하니 로게는 그 자리에서 “No, I  cannot”라고 잘라 거절했다고 한다. 김영삼 대통령이 사마란치에게 IOC위원 추가 선임(이건희 삼성회장을 염두)을 요청했을 때 “가서 연구해서 김운용 IOC부위원장을 통해 알려주겠다”한 것과는 너무 대조적인 부분이다. 

두 사람은 한국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사마란치는 서울올림픽 직후 서울올림픽 성공에 대한 공로로 서울대학교에서, 로게는 2005년 ANOC 총회 직후 그냥 경희대학교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로게는 가는 나라마다 명예박사학위를 수집하고 다녔다고 한다. 한국에서 하나쯤 주었다고 그다지 고마워할 것 같지는 않다. 로게를 만나고 돌아온 사람들은 마치 그가 평창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 것처럼 떠들고 다녔다.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IOC는 모든 유치신청자, 유치희망자에게 ‘잘 해보시오’라고 권장하는 것이 통례다. 로게도 그런 입장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의 IOC위원과 언론이 부정적인데도 남아프리카공화국에게 할 만하다 해보라 등 운을 뗀 것도 좋은 예다. 시카고가 떨어질 줄 알면서 오바마 보고 IOC총회에 오게 해서 오바마가 무척 언짢아 한 일도 있다고 한다. 스포츠 외교는 실리와 확증으로 하는 것이지 공상과 이념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선거와 운동경기는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것이다. 우리가 아직 사대주의 사상과 포퓰리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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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스위스 로잔 IOC본부에서 집행부와 함께




2016년 04월 14일 오전 11시 
김 운 용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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