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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3.10.07 조회수 3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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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 네번째 남기는 글 - 부에노스 아이레스 IOC총회 다음에는(Ⅱ)

김운용 칼럼- 여든 네 번째 남기는 글

부에노스 아이레스 IOC총회 다음에는(Ⅱ)

9월 7일 부에노스 아이레스 IOC총회에서 2020년 하계올림픽-패럴림픽 개최도시로 일본 도쿄를 선정한 IOC는 9월 8일에는 지난 번 집행위원회에서 퇴출되었던 레슬링을 올림픽 종목으로 다시 복귀시켰다. 수년간 개혁과 보급과 로비를 해오던 야구-소프트볼과 스쿼시는 진입에 실패하였다. 이어서 IOC는 6명의 후보 즉 바하, 캐리온, 능, 오스왈드, 부브카, 우 중에서 독일의 토마스 바하(Thomas Bach) 부위원장(독일체육·올림픽위원장)을 IOC위원장으로 선출함으로써 토마스 바하는 앞으로 8년 내지 12년 동안 세계스포츠와 IOC를 이끌게 됐다. 바하 시대에 소치, 리오데자네루, 평창, 도쿄 동하계 올림픽을 치른다. 금메달리스트로서는 처음 선출되었고 지금까지 9명의 IOC위원장은 미국인 브룬디지(Avery Brundage)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럽인이 차지했는데 그 전통도 이어가게 됐다. 바하는 선수출신이 선수로 그치지 않고 변호사, 사업가, 스포츠 행정가로 성공한 모범적 사례다. 1993년부터 20년간 IOC위원으로 있으면서 부위원장, 법사위원장, 유럽지역 TV방영권 교섭책임자, 독일외무성 자문, 독일체육올림픽위원장 등 다양한 경륜을 쌓았다. 정형외과 출신 로게와는 사뭇 다르다.

바하는 쿠베르탱의 이념을 승계하는 독일 체육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IOC를 중흥하고 재정 파탄 위기에 있던 IOC를 구출하여 탄탄한 IOC를 만들어낸 사마란치 위원장의 혁신적인 행정 그리고 무사안일주의로 그 재정 기반을 유지하면서 사마란치와 무언가 차별화하려던 로게 두 사람의 IOC위원장과 일하면서 모든 세대를 이어갈 수 있는 입장이다. 로게는 한 치의 부정 요소도 용납 안한다는 'Zero Tolerance'를 내걸었지만 사마란치 시대 이상의 금전 왕래, 부패, 국제사이클연맹(UCI)의 예와 같은 약물 복용, 지금도 국제경찰이 수사중인 스포츠 도박, 승부 조작, 21세기에 맞는 현실적인 스포츠 종목 재정비, 국제연맹(IF)과 국가올림픽위원회(NOC)의 도전, 우후죽순으로 생겨날 유럽 게임, 스포츠 어코드(Sports Accord)가 주장하는 세계선수권대회의 총집체 주장, ANOC의 NOC 게임 창설 주장, ENOC의 유러피안 게임(European Game) 창설 등 많은 과제를 남겨놓고 떠났다. 사마란치 시대에는 IOC의 재정 지원을 받아야했던 국제축구연맹(FIFA)이나 다른 국제연맹(IF)이 이제는 자체적인 재정 수입도 가지면서 점점 발언권이 강해졌다.

바하는 현실에 눈을 깨어야할 위치에 서게 됐다. 바하는 수락연설에서 ‘다양 속의 통합(Unity in diversity)’이라는 철학을 내걸고 올림픽 경기에 중점을 두고 청소년 체육을 위한 청소년과의 소통을 내건다. 세계 방방곳곳의 새로운 스포츠나 청소년과도 대화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올림픽 종목을 21세기에 맞추는 문제도 문을 열어놓고 있으며,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끝으로 없어진 올림픽의 시범 종목 부활도 언급한다. 무엇보다도 그는 사마란치가 12년 걸려 이룩한 국제연맹(IF) 그리고 NOC와의 융화를 다시 이루어 취약한 기초위에 서있는 IOC를 끌고 가야한다. 스포츠 발전의 거목 후앙 아벨랑제(Jao Havelange)나 마리오 바스케즈 라냐(Mario Vazquez Raña)도 본의 아니게 떠났다. IOC사무국 의존에서 벗어나 IOC위원들에게도 권한과 일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또한 IF, NOC뿐 아니라 미국NOC, 중국NOC, 러시아NOC, 소치·리오데자네루·평창·도쿄 4개 올림픽조직위원회와도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도 로게는 푸에르토리코의 카리온을 선호하여 많은 후보들이 출마하게 직간접적으로 권유하였다. 1차에 표가 분산되어 바하가 당선이 안 되면 2차 때 카리온이 되기를 희망했던 것 같이 들린다. 그러나 2001년 모스코 IOC총회 때의 사마란치만큼은 힘이 못 미쳐 후보들의 자유로운 여행과 방문, 세미나 참석, 정강 정책 발표 등은 금지시키지 않았고 유력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윤리위원회 동원이나 여러 채널을 통한 사퇴 권고는 하지 않았다.

바하는 88서울올림픽 때는 아디다스(Adidas) 참모자격으로 방한하였고 그 후 윌리 다우메(Willi Daume) 위원의 뒤를 이어 1993년 버밍햄(Birmingham) IOC총회에서 로게(Jacque Rogge)와 함께 IOC에 입문하였다. 그 후 메르데스 벤츠(Benz) 버스 전달을 위해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독일 상사의 북한 내 기업에 대한 융자금을 받아주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사마란치가 자기 의중과 다른 IOC위원장이 나올까봐 엄청난 무리를 해서 로게를 당선시켰지만 사마란치 도움 없이 자기 자력으로 IOC위원장이 되었다고 강변하면서 사마란치 위원장에게 1년에 한 번도 전화를 하지 않았던 로게와는 달리 바하는 사마란치 생전에 늘 공사관계를 유지했다. 사마란치도 전임 킬라닌(Lord Killanin) 위원장에게 일주일에 한번씩은 전화를 걸었었다. 로게가 2004년에 비밀리에 방한하여 삼성 리움미술관을 방문한 것도 IOC 소식통은 문제시한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펜싱 결승에 김영호와 독일선수가 맞붙었다. 대한올림위원회 위원장을 겸직하던 나도 김영호 응원 차 경기장에 나갔는데 시상은 바하가 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만약 독일이 이기면 자기가 예정대로 시상하고 한국 선수가 이기면 나보고 하라는 것이었다. 룰이 있는데 바꿀 수 있나 했더니 바꿀 수 있다하고, 요행히 김영호가 우승하여 내가 대신 시상을 했다. 그의 인품을 알 수 있다. 2011년 모스코 IOC총회 때는 투표 전 날 나보고 이런 분위기와 이런 식으로는 선거 하나마나라고 분개 아닌 걱정을 해준 일이 생각난다.

싫거나 좋거나 KOC는 IOC 헌장에 의해 한국 내 올림픽 운동을 증진시켜야 하고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은 바하 위원장 지도하에 치르게 된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바하가 앞장선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도시 뮌헨을 삼성이 막대한 투자를 한 것으로 알려진 평창이 물리친 일도 있고 이건희 IOC위원의 유죄 판결에 이어 자격정지 문제를 로게가 다룰 때 바하는 이해관계 상충으로 규정하고 집행위원회 퇴장을 한 일도 있다. 또 2017년 올림픽 종목 재심사 때 태권도 문제도 계류되어 있다. 늘 논의 되는 남북 공동 개최나 스포츠 교류도 IOC 승인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번 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지 선정에 바하나 북한 IOC위원이 도쿄를 지지했고 일본 IOC위원이나 북한IOC 위원이 바하의 강력한 지원자였다는 사실도 참고할 일이다. 외교는 극단적 이데올로기나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확증과 사실 그리고 실리에 입각해서 하는 것이다.

김운용 드림
2013년 10월 7일 AM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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