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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6.09.26 조회수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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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스물다섯번째 남기는 글 - 국기원을 생각하며

[김운용 칼럼 - 백 스물 다섯번째 남기는 글]

국기원을 생각하며

 


9월 4일은 필자가 1994년 IOC 창립 10주년을 기념하는 파리 IOC총회에서 태권도를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 시킨 역사적인 날이다.


때마침 국기원 이사장에 홍성천, 원장에 오현득이 취임하여 태권도의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고 새 출발을 하였다. 그들은 태권도에 평생 헌신한 사람들이라 태권도 발전에 헌신하리라고 확신한다.


국기원은 태권도인의 여망에 부응해 1972년 본인이 1년 만에 건립한 태권도 종주국의 뿌리인 세계태권도본부(World Taekwondo Headquarter)이다.


현대 태권도는 1972년 국기원 건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국내적으로 국기화 하는 과정에서 30개 관 통합, 승단 심사 통일, 지도자 교육 과정 설립, 도복 제정, 품새 개발, 경기 규정 제정, 전자호구 개발, 무도정신 계승을 위한 한마당 창설과 태권도기념관 개관 등 개혁과 성장,  안정이 이루어졌다.


또 국기화에 이어 세계화를 향해 국기원에서 1973년 제1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와 세계태권도연맹을 창설하여 GAISF, CISM, FISU, 아시안게임, 팬암게임, 아프리카게임에 가입하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 에선 태권도가 시범종목으로 채택되었고 국기원이 공식연습장으로 활용되었다. 드디어 1994년 파리 IOC총회에서 85 대 0, 만장일치의 표결로 올림픽정식종목 채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국기원을 모체로 이루어졌다. 이 개혁과 성장이 없었으면 태권도 올림픽종목 채택의 영광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의 독단으로 국기원은 태권도의 뿌리로, 대한태권도협회는 종주국 태권도의 중심으로, 세계태권도연맹은 세계 보급과 국제스포츠 활동의 모체로 세 단체로 나눠 역할을 분리 시켰다.


그 모체는 국기원이었다. 국기원이 없고 국기원의 바탕과 지원 없이는 세계태권도연맹이나 대한태권도협회를 생각할 때 지금처럼 세계에서 우러러보는 기구로 당당할 수 있었겠나 생각해본다.


이 과정에서 세계스포츠지도자들 사마란치(Antonio Samaranch) IOC위원장을 비롯 많은 IOC위원, 각국 체육장관, 국제연맹회장, OCA 회장, CISM 집행부, 소련, 동독, 미국을 비롯한 NOC위원장, 그리고 무하마드 알리까지 많은 체육지도자가 국기원에 와서 보고 생소했던 태권도에 대해 알아 갔다.


태권도는 무도의 정신과 전통을 유지하면서 발전한 올림픽종목이다. 정부가 국내법에 의해서 보호해주고 지원해주는 것, 기업이 스폰서를 해주는 것도 필요하고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태권도인 이외에는 모두 임시 관리자(Temporary Custodian)이며 태권도의 주인은 태권도인이다.


이번에 선출 된 홍성천 국기원 이사장은 태권도인 출신이며 오현득 원장은 태권도인이자 행정가 출신이다. 이들이 태권도의 새로운 비전을 내걸고 새로 출범했다. 태권도인이기 때문에 태권도의 비전을 향한 발전에 헌신하리라 믿는다.


이전에 국기원, 세계태권도연맹, 대한태권도협회가 삼위일체가 되어 세계가 놀란 올림픽 역사 창조에 매진했듯이 태권도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모두가 다시 단합하고 힘을 모을 때다. 

 
김 운 용
국기원, 세계태권도연맹 창설총재
전 IOC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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