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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6.08.31 조회수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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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스물네번째 남기는 글 - 아벨란제를 추모하며



[김운용 칼럼 - 백 스물 네번째 남기는 글]


아벨란제를 추모하며



축구의 황제라고 불리던 전 FIFA 회장이며 IOC위원이던 아벨란제(Jao Hawelange)가 100세 나이로 리우 올림픽 기간 중 타계했다.


그는 블래터(Balatter) FIFA회장 이전에 오늘날의 세계 축구를 있게 하고 FIFA를 돈 방석에 올려놓은 사람으로, 스포츠계 특히 축구계에 다대한 공을 세운 사람이다. 은퇴하기 직전 100만 달러 수뢰혐의로 IOC가 2개월 정직을 결정하자 IOC를 사임하고 은퇴했다. 리우 올림픽 유치도 그가 오랫동안 노력한 산물이고 누즈만(Nuzman) 조직위원장도 그가 추천한 사람이다.


한국하고의 인연은 2002년 FIFA World Cup이 일본으로 기울어졌을 때 김영삼 대통령이 당시 IOC위원장이던 사마란치(Samaranch)에게 도움을 요청한 일이 있다. 사마란치와 아벨란제 사이에 리우 올림픽 등을 놓고 협박성 합의로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가 하룻밤 사이에 결정 된 것은 외신보도와 같이 역사적 사실이다. 이를 알게 된 일본과 한국도 놀랐다. 

1995년 부다페스트 IOC총회에서 아벨란제가 미는 리우와 내가 미는 서울 두 도시가 IOC총회 개최권을 두고 투표를 했고, 서울이 99년 총회 개최권을 가져온 일이 있다. 그러나 투표가 끝나자 아벨란제는 서울의 성공을 기원하며 지지 발언을 하는 등 신사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축구결승시상식(조지아주립대학교- Athens, GA)에서 내가 시상하고 아벨란제가 화한을 증정한 인연이 있다. 1999년 서울 IOC총회 때는 나와 누즈만 위원과 점심을 하며 차기 IOC위원장으로 지지할 것을 표명했었다. 그러나 2001년 모스코 IOC총회에서 그는 같은 벨기에계인 로게(Rogge)를 지지했다. 그 로게가 아벨란제의 정직을 결정한 것도 아이러니한 일이다.


생전에 아벨란제는 마드리드에 투표하고 사마란치는 리우를 밀었었다. 이들은 만약 리우가 되면 리우 올림픽 때 아벨란제의 100회 생일을 축하하자고 약속했지만 근대 올림픽의 중흥을 이루어낸 사마란치는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직후 먼저 타계했다.

 
아벨란제의 사망에 IOC 일부가 추도식을 하자고 건의했다. 하지만 바하(Bach) IOC위원장은 브라질에서 아벨란제를 안 좋아한다고 추도식을 거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쉬운 대목이다. 영웅은 자기 나라에서는 안 알아주는 모양이다. 누구나 과오가 있을 수 있지만 공적은 인정하고 숭상하는 풍토가 아쉽다. 세계스포츠계의 거성 아벨란제의 영원한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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